[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사임당', 희한한 실패사례

야심차게 시작한 SBS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시청률 부진을 겪고 있다. 첫 회 시청률 15.6%(AGB 집계)로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이내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5회에선 10.7%까지 내려갔다. 최악의 경우 한 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그중 대중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전제작 드라마 특유의 한계가 패인의 중심으로 꼽힌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지난 3개월여 사이 주목받은 드라마 3편, tvN ‘도깨비’ SBS ‘푸른 바다의 전설’ 그리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모두 동일한 장르다. 판타지 멜로다. 그중 최후발주자엔 시청자들도 싫증날 만하다.

거기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타임슬립 장치를 동원한 판타지 사극이다. 2003년 SBS ‘천년지애’를 시작으로 MBC ‘닥터 진’ SBS ‘신의’ 등등이 같은 서브장르였지만, 그중 명확한 히트 사례는 ‘천년지애’ 정도다. 시청층 문제 탓이다. 판타지 사극은 기존 사극 주 시청층인 중장년 남성층 타깃이 아니다. 평일 밤 트렌디 드라마를 즐기는 젊은 층 타깃이다. 이에 ‘천년지애’는 당시 젊은 층이 즐겼던 영화 ‘은행나무 침대’ 모티브에 충실했고, 캐스팅도 성유리 소지섭 김남진 등 젊은 스타들 중심으로 포진시켰다.

그런데 ‘사임당, 빛의 일기’는 소재가 된 역사 속 인물 사임당부터가 그야말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인물, 고색창연한 느낌이다. 타이틀 롤을 맡은 이영애도 올해 우리나이 47세다. 마지막 TV드라마 출연작이 13년 전, 영화도 12년 전이다. 그 전성기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에게나 살갑고 신뢰도 높은 스타다. 결국 중장년층이 즐기는 장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 층에 어필할 만한 소재와 캐스팅도 아닌 셈이다. 제대로 된 상업전략이 아니다.

사실 판타지 멜로드라마란 것 자체가 참 특이한 서브장르다. 유난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고, 또 자주 만들어진다. 그만큼 노하우도 쌓였을 법한데 그래도 이런 오판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지상파방송사 중에선 SBS가 가장 이 서브장르에 주력한다. 초능력자를 다룬 ‘고스트’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의 ‘돌아와요 순애씨’ ‘시크릿 가든’ ‘49일’ 타임슬립 소재만 해도 ‘사임당, 빛의 일기’ 이전에 ‘천년지애’ ‘옥탑방 왕세자’ ‘신의’ 등 끝도 없다. 그러니 SBS 측으로선 이영애라는 걸출한 한류스타를 데려다 놓은 김에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판타지 멜로로 밀고 나가면 효과를 보리라 예상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게 가장 안전한 전략이다. 그런데 그건 그저 ‘만드는 쪽’ 입장일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고려사항, 즉 ‘볼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계산이 빠졌다. 희한한 종류 실패사례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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